꿈을 바구니에 담아 간직하다 보면!!

지금 참 힘들죠? 근데 내일은 지금보다 덜 힘들거예요

힘든 건 오늘만이 아니다.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계속될 것이다.

무협지 관련자료

강호를 이해하기 위한 101가지 개념 - 3

duaidot 2025. 12. 24. 10:54

짓한 이 동굴은 그로 인하여 달마동이란 이름을 얻었다. 
면벽  구년 동안 달마가 마주보고 앉았던 돌에는 달마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버렸다고 전해진다. 거무스름한 빛이 도는 흰 돌에 좌선하는 달마상이 검은 색으로 
찍혀진 이 '면벽석'은 높이가 석 자쯤 되는데 나중에 동배전(아미타전에 해당되는 
소림의 전각)으로 옮겨져 유리상자 안에 모셔지게 되었다. 
그는 참선의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고 용맹정진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일련의 
무공을 창조하였다고 하니 이것이 그 유명한 <역근경>과 <세수경>이다. 
달마대사는 후에(536년) 보리유지와 광통율사의 질투로 독살당한 뒤 관 속에 신발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런데 그 후에 인도에 갔다 오던 위나라 사신 송운이 인도로 
돌아가는 사후의 달마대사를 만났다고 한다.  

달마역근경(達摩易筋經)   
소림 무학의 원조인 달마대사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무경의 하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랜  판본은 당나라 정관 2년(서기 628년)판으로 
그 책에는 "이 책은 달마대사의 유작이며 소림사 권법의 원전이다"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역근경>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00년 이후로, 
현존하는 <역근경>중 가장 오래된 것은 청나라 도광 3년(1827년)에 출판된 것이다. 
게다가 <역근경>은  송나라의 충신인 악비가 만들었다는 설마저 있어 그 진위를 
확인할 수가 없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역근경>과 <세수경>을 보아도 무술과 
그렇게 커다란 관련은 없어 보인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건강도인법과 별로 
크게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전해지고 있는 <역근경>들이 달마대사시대의 
것과 똑같다는 보장은 없지만 아뭏든 이런 점으로도 역사적 사실과 무술세계의 
전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답설무흔(踏雪無痕)   
말 그대로 눈을 밟아도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몸을 가볍게 해서 빠르게 펼치는 
경공.   

당문(唐門) 
위치 : 사천성 성도 부근 
특징 : 암기와 용독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명가들을 배출하는 
       무림세가. 조금이라도 빚진 것이 있으면 넘어가는 법이 없어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암기제조법과 암기술, 용독술을 유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데릴사위제를 채택하고 있다. 
암기 : 독질려, 혈적자, 비황석, 단혼사, 육혼망, 귀왕령 등 수십, 수백종이나 된다. 
절기 : 만천화우, 비황진 등  

대뢰음사(大雷音寺) 
대뢰음사(大雷音寺) 천축에 있던 전설적인 밀교 사찰. 
소뇌음사가 사악하고 이기적인 문파로 묘사되는 것에 반해, 대뢰음사는 공명정대하고
중생제도적인 문파로 묘사된다. 인도의 소승불교적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승불교적 설정이라 보인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고 빠른 번개를 본딴 기공과 장공,
검공을 주된 절기로 가지고 있는 문파로 묘사된다.  

대수인(大手印)
내공의 힘으로 손을 크게 부풀게 만들어 강력한 파괴력을 내게 하는 장법의 
일종으로 서장 라마들의 절기라고 반 전설적으로 알려져 있는 수법이다.   

대완구(大宛駒) 
명마의 하나. 한나라 때 서역 쪽의 국가였던 대완에서 난 말.

대주천(大周天)   
기를 전신에 순행시키며 새로운 에너지의 흐름을 일으키게 하는 일주 과정. 
이 대주천시 기가 운행되는 각 혈의 경로는 유파마다 다르다.   
  
대환단(大還丹)
소림 비전의 요상성약으로 일반인이 복용하면 무병장수하고, 무림인이 복용하면 
일갑자의 내공을 얻는다 한다. 극히 귀해 거의 절전된 요상성약이다.  

독각화망 
뿔이 하나 달린 엄청난 크기의 구렁이. 자연의 오묘한 기운과 영물을 먹어 
기형적으로 커진 구렁이로 도검이 불침하는 표피와 맹독, 내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영물을 수호하는 동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독술(毒術)     
인체에 치명적인 독을 쓰는 무술의 한 가지. 
사천당문이나 묘강 등 새외의 여러 문파들이 이에 능하다.   

동자배불(童子拜佛)     
부처를 수행하는 동자가 부처에게 절을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초식의 한 가지. 
주로 불문 무공의 기수식이다.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 
동정호를 주무대로 노략질을 일삼는 수적들이 18개의 준독립적인 수채들로 세력을 
형성한 뒤 이들의 연합으로 조직된 거대 방파를 말한다. 
총채주와 각 채주들이 지도부를 구성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녹림에 속한다.  
마교(魔敎)  
페르시아에서 발생한 조로아 스터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현교, 명교, 배화교, 
마니교로 불리며 유행하였지만, 그 교리의 이질감, 극단적인  이분법, 하급 계층을 
중심으로 한 신자들의 분포, 교리와 신자들의 계층적 성격 등으로 인한 반체제, 
반정부 성향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대대적인 탄압을 받고 지하로 숨어들어 가게 된다. 
그들은 송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방랍의 난, 원을 몰아내고 명을 세우는 데 일조한 
농민봉기(진우량, 주원장 등이 중심이 됨)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정부의 탄압에 
대항한 일반 민중종교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주로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가 자기 
세력 유지의 관건이 되었던 사족, 세가에 기반한 무예가들은 이를 사교화하고 멸시, 
배척하였다. 무협소설에서는 극악한 마도의 종교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는 지배자의 입장을 반영한 관점에 기인한다. 
1. 조로아스터교
   페르시아인 조로아스터란 사람이 창시한 교로서 배화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을 숭배하는걸로 알려져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최고신이자. 광명과 
   정의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고 있다. 조로아스터 교는 페르시아의 국교로 
   상당히 번성했던 종교이다.
2.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아베스타"
   아베스타는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으로 아베스타란 단어의 뜻은 지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인 아후라 마즈다가  조로아스터에게 계시한 지식을 
   말한다.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편찬되었으며 기도와 의식, 제신에의 찬가, 
   일상제사의 관한 기도문 등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다. 
3. 명교의 구성
   교주 한 명을 중심으로 하여서 광명좌사와 광명우사가 교주를 보필하고 
   그 밑으로 사대 호법이 있으며 또 그 밑으로는 오산인이 있다. 
   그리고 별동정예부대가 있는데 이를 오행기라 한다. 
4. 명교의 상징물인 '불'
   명교의 상징은 불이다. 모든 번뇌를 태운다고한다. 아울러서 착한이의 영혼을 
   깨끗하게 소제해 주고 악한이의 영혼은 태워 소멸시켜 버린다는 뜻도 있다. 
5. 성화령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나왔던 명교의 교주신물. 백금에 현철과 황철사를 섞어 
   주조한것으로 엄청난 고온에서도 녹지 않고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 성질을 
   지녔으며 그 표면에는 페르시아의 살수무공이 적혀 있다. 
6. 명교의 대표무공 '건곤대나이'
   이것은 완벽한 무공이라기보다는 무공과 심법의 혼합형태 같다. 
   순전히 내공에 의지하여서 힘을 내긴 하나 그 발휘되는 힘은 엄청나서 웬만한 
   바위도 일격에 부술 정도이고 고단계로 가면 적의 공격을 마음대 있으며 배우는 
   이의 내공수준과 오성에 큰 영향을 받는다. 
7. 명교의 첫째가는 특징 '충성심'
   명교의 교인들은 충성으로 말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임. 
   게다가 서로 돕는다는 교리 덕분에 단체공격시에 대단한 위력을 보여준다. 
8.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마교
   명교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정부에 의해 금지된 종교는 거의 마교로 불리웠다.  

동귀어진(同歸於盡)     
둘이 함께 죽기를 바라고 공격하는 최후의 술수.   

동작대(銅雀臺) 
하남성 임장현의 서남쪽 16킬로에 있는 업도의 유지. 위나라 조조의 근거지 로 
시작하여, 후에 조나라 석호가 축영한 다음, 파괴, 재건을 거듭하여 최 후에는 
북주가 파괴하였다. 북제의 석사등이 있다. 
큰 동작을 주조하여 다 락 꼭대기에 놓았다.   

동창(東廠) 
중국 명나라 성조 때인 1420년에 창설되어 1644년 명이 망할 때까지 황제가 
관민의 동정을 몰래  살피기 위해 두었던 황제 직속의 정보기관. 
장관은 제독 동창이라 한다.

등봉조극(登峰造極)     
삼화취정이나 오기조원의 경지를 넘는 최고의 경지. 다른말로 육식귀원.   

등왕각(騰王閣) 
당태종의 아우로 등왕이 된 이원영이 홍주 도독으로 재임중 남창의 서남쪽 에 세운 
누각. 그후 한 때 황폐된 것을 홍주도독이 된 염백서가 수복하였다. 
염은 이것을 자랑삼아 9월 9일 중양절에 많은 손님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자기 
사위에게 기념시를 짓게 하여 문명을 떨치게 할 생각으로 미리 짜놓았 다. 
이때 왕발이 남방에 유배된 자기 부친을 찾아가는  길에 남창에 들러 우 연히 
이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좌중에서 가장 연소하였다. 
왕발은 즉흥 적으로 이 시를 지어 만를 경탄케 하였고 이것을 읽고 모두들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고 한다.  

라마 
라마 라마교의 고승. 라마란 티벳 말로 무상자(無上者)란 뜻이다

등평도수(登萍渡水)   
도가비전의 경공법. 물 위를 수평으로 빠르게 걷는 경공.    

마작(麻雀) 
중국에서 건너온 실내 오락의 한 가지. 상아나 골재에 대로 뒤쪽을 붙인 
직사각형으로 된 136개의 만자, 통자, 삭, 삼원, 사희 등 다섯 가지 
패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짝을 맞추는 놀이로 보통 네 사람이 한다.   

만년설삼(萬年雪蔘) 
만년 묵은 설삼. 설삼이란 극한지에서 자라는 인삼의 일종이다. 
만 년 묵은 설삼은 영성이 생겨 보통 사람이 먹으면 불로장생의 영약이 되고 
무림인들이 먹으면 엄청난 내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만년지극혈보 
지정이 엄청난 압력과 고온으로 만년에 걸쳐 녹아 형성된 영약. 
양(陽)을 대표하는 영약으로 처방없이 먹으면 그 열기를 못 이기고 타 죽는다. 
탈퇴환골과 생사현관, 세맥의 타통을 가져오는 공능을 갖고 있다.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 
하수오란 무처럼 생긴 식물로서 약재로 쓰이는 것이다. 
만 년 묵은 하수오는 영성이 생겨 보통 사람이 먹으면 불로장생의 영약이  되고 
무림인들이 먹으면 엄청난 내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만년한철(萬年寒鐵) 
만년 묵은 한철. 그 경도가 대단하여 그 어떤 것으로도 자르거나 부수기 힘든 
상상 속의 철. 보검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   
천하의 어떠한 독도 침범하지 못하는 신체. 최상의 독공을 수련하거나, 
극악한 독약을 먹게 되면 독약에 대한 내성이 생겨 만독이 불침하게 되며, 
금강불괴가 되어도 만독이 불침하게 된다.  

만류귀종(萬流歸宗)   
불교에서 일컫는 모든 흐름은 하나로 통일된다는 말로 무학의 종류는 다르되 
절정이 되면 하나의 형태로 움직인다는 뜻.   

만천화우(滿天花雨)     
온 하늘에 꽃비가 가득찬다는 이름의 암기발사법. 인간이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시간차를 두며 때로는 직선으로, 때로는 선회하며 공격하는 암기들 때문에 
공격대상은 피할 수가 없다. 암기술 중 가장 뛰어난 초식이다. 
사천당문의 최고최후의 초식이다.   

모산파(茅山派) 
대강 3세기 말에서 4세기에 걸쳐 발생한 문파로 옥주궁파라고도 한다. 
이 파의 개조는 삼모군 또는 진의 관리인 위서의 딸인 위화존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위화존의 일화는 <모산지> 제10권 [상청제일대태사] 편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위화존은 24세 때 부모에 의해 억지로 어떤 남자에게 시집 보내졌는데 그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얻게 되었다. 남편이 하남성의 현지사로 발령 받았기 때문에 
임지로 동행하였으나, 그녀는 남편과는 다른 방을 사용하며 부부의 교합을 금하고
재계하고서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하였던 도교의 책을 읽으며 참깨와 다른 약초를 
먹곤 하였다. 그러던 중 태강 9년(288) 12월 16일 한밤중에 돌연히 태극진인 등의 
선인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31권의 도서를 주었다. 
그녀는 81세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거기에서 서왕모의 영접을 받아 
자허원군이라고 하는 선녀의 자리를 얻었다." 모산파는 남북조 시대에서 당대에 
걸쳐 불교와의 논쟁에 큰 활약을 하여 교리에 밝았으나 후대에는 많이 약화되어 
방랑 및 탁발행을 하여 주문 및 부적 쪽의 법술면을 치중하는 문파로 많이 
변모되었다.  

모용세가(慕容世家) 
중국사람들은 오랑캐라고 천시하는 세가. 모용은 진시황에 의해 통일되기 이전의 
7개국중에서 연나라 왕족이다. 우리나라에 불교를 전해준 전진이나 동진도 연나라의
후손.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 우리민족과도 가깝다. 
무협지 같은데 보면 무림제패를 꿈꾸는 나쁜 사람으로 나오는데 그것은 중국인의 
화이관적 시각이다.  

몽환약(夢幻藥) 
사람의 넋을 몽롱하게 만드는 약. 미혼약. 오늘날로 보면 마약의 일종이다.  

묘시 
오전 5시 ~ 7시.  

무경칠서(武經七書) 
군사 및 경전에 관한 일곱 가지 경전. 육도, 삼략, 손자병법, 오자병법 등을 
일컫는 것으로 생각된다.  

무극(無極) 
송나라 유학, 즉 주자학의 설에 있어서 태극의 처음 상태. 우주의 근원.  

무당파(武當派) 
억울하게 소림사에서 나온 장삼봉이 세운 문파로 짧은 시간에 소림과 더불어 무림의
양대산맥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급성장하였다. 
불가인 소림사와는 달리 도가쪽에 속하고 무공도 소림의 강맹한 무공과는 달리 
부드러움을 위주로 하고 특히 검법에 뛰어나다. 
 1. 무당의 소재지 무당은 산의 이름으로 호북성 균현에 위치해 있다. 
    남웅주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하늘로 높이 솟아있고, 그 모양은 향로 같으며 
사시사철 안개에 싸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형주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균현 
남쪽 이백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오악의 하나라 한다. 
수경주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무당산은 산세가 수려해 봉우리가 향로  
같으며 증수가 산기슭에서 발원된다." 무당산기에는 보다 자세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무당산의 둘레는 사,오백리. 많은 봉우리 중에 삼령이란 봉우리가 
있는데 높이가 이십여리에 달하며 늘 흰구름에 싸여 있다. 
해가 이곳에서 떠올라, 이곳에서 저물어 또한 일조산이라 한다. 
하여 많은 참배자가 모여들며, 도관이 많이 세워져 있다." 
여지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모두 72봉과 36암, 24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주봉. 일명 자소봉이라 한다." 삼재도회무당산도고에는 
무당의 위치가 옛이름으로 적혀 있다. "
    무당산은 양양부 균주성에 위치해 있다." 
 2. 무당산의 이름과 신화 형주기에 의하면, 무당산은 일명 선실,  일명 태화라 한다. 
    수경주에 의하면, 무당산은 태화산, 혹은 삼상산,혹은 선실이라 한다. 
그외에도 무당산은 사라산, 태악, 대악으로도 불리워졌다. 무당산이란 이름은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원나라 대오룡령응만수궁비에 의하면 "양한 균방 부근에 
산이 있어 그 둘레가 팔백리에 달하니...산의 이름은 태화였다. 한데 원무신이 
    이 곳에서 득도하여 이름을 무당이라 고쳤다. 원무신이 아니면 이 산을 당할 수
없다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명나라 때 유삼오가 쓴 무당산오룡령비에 
의하면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원천지기의 신이 건원씨 때  
정락국에서 태어났다. 열다섯이 되던 해, 그는 요마를 소탕하겠다는 일념으로 
부모의 곁을 떠났다. 하여 옥청자원군으로부터 무극상도를 전수받았다. 
그후 바다를 건너 중원으로 돌아와 명산을 순례하던 중 어느날 한 산봉오리에 
올랐다. 당시 그 산에는 자소면양이란 요귀가 기거하고 있었으니 원천지기의 
신은 검은 낙타의 뿔로 만든 검으로 요귀를 죽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했다. 
그 산이 바로 무당산이다." 
    원나라 성거천의 대천일진경만수궁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산봉우리의 최고봉은 남암이라 한다. 암앞에 동굴이 두개 있으니... 
이름하여 대안황애와 천연정극풍천이라 한다. 위로는 뜬 구름 아래로는 가파른
절벽. 원숭이가 떼지어 살며 야수들이 우굴거린다. 사람은 이곳으로 한 걸음도
들여놓기 어렵다. 그런데 용한년대 허위지정이 내려와 사람으로 둔갑하여  
산에서 수도를 했다. 도를 터득한 후 그는 용을 타고 승천하였으니 원무지신이라 
한다." 이러한 신화는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원나라 사람 식자홀이 그 전설의 
허구를 파해쳤다. 그가  저술한 무당사적서에 의하면 "임금의 명을 받들어 
균주성에 부임했다. 무당산이 복지라는 것을 일찍이 전해 들은 것이 있어 전설에 
대한 사실을 파헤쳐 나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애기가 제각기 달라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3. 무당 기공의 종류 무술적 기공의 단련법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북숭소림, 남존무당>이라 하여 숭산의  소림사와 태극권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무당파의 기공법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무당파의 기공, 
즉 무당공은  무당도인 서본선의 <<무당비공>>이라는 책에 그 종류와 연공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천화포접공, 구궁장공, 건곤구공,  야행술공, 
현무공, 유골공, 연경공, 차장공, 태극구공, 면장공 등이 기록되어 있다. 
  1)천화포접공 : 천화포접공은 무당산 자소궁의 구궁팔괘문에 속하는 단련법의 하나로 
  이 기공의 목적은 전진,  후진, 도약력 등의 운
    동능력과 기술을 계속익히는 경우에 훈련한다. 
  2)구궁장공 : 구궁장공은 아홉개의 벽돌을 사용해 몸의 움직임의 민첩성과 발의 
               안정성을 기르기 위해 사용하는 기공법이다.  
  3)건곤구공 : 건곤구공은 주로 눈의 힘과 발놀림을 키우기 위한 기공법이다. 
               익숙해지면 날 듯이 달리며, 적의 품으로 자유자재로 잠입하는 
   경공의 기술을 간단히 할 수 있게 된다. 
   연공방법은 약 600그램 정도의 돌이나 철구를 사용해 한손으로 
   공중으로 던지고, 다른 손으로는 잡는 연습을 한 후 익숙해지면 
   양발에 모래주머니나 철추를 매달고 급격한 산길이나 비탈길을 
   오르며 던지고 잡는 연습을 한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원숭이처럼 
   가볍고 묘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4)야행술 :   공유신공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밤중의 활동능력을 기르기 위한 
               기공법이다.  
  5)태극구공 : 이 기공을 연습하려면 적당한 범위 내에서 여러가지  목제로 만든 
               공을 준비한 후 마보(마보)를 취한뒤, 양손바닥으로 이 공 하나를 
   잡고 회전시켜 상하, 좌우 방향으로 잡아 들어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동작은 어디까지나 천천히, 몸은 절대로 흔들
   거려서는 않된다. 
   <기>는 다리에서 발생하여, 허리를 통해 단전으로 순환시켜  간다. 
   하나의 나무공으로 200회 정도 수련하면 점차 목구에서 석구, 
   철구 등의 무거운 것으로 바꾸어 연습한다. 이것이 능숙해지면 
   연습자의 손에는 끈기가 생겨 일단 잡힌 상대는 절대로 이쪽의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6)면장공 :   이 기공은 무당파 기공 중 가장 중요한 단련법의 하나이다. 
               단련방법은 세수공이라는 기공법을 사용해 전신으로 기가 와닿는 
            것처럼 훈련하고 그 것이 가능해지면 높이 1.5m 가로 3m 정도의 
   벽돌을 2열로 늘어세운 벽이 있는 곳에서 단련을 한다. 
               단련자는 이앞에서 세수공을 행해 기가 가득한지 가늠해보고, 
   양손바닥으로 동시에 이 벽을 친다. 이 벽을 박살낼 수  있게 되면, 
   이번에는 이 벽위에 목화로 만든 종이를 몇십장 붙이고 이 것을 
   찢어버리지 않고 벽을 쳐서 쓰러뜨리도록 단련해 간다. 
   손은 처음에는 양손을 같이 사용하지만 익숙해지면 한 손만으로도 
   똑같은 위력이 생길 때까지 단련해 간다. 
  7)태극기공 : 중국 무술의 한 종목목인 태극권은 원래가 기공적인 사상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권법인지라 기를 기르고 단련하기에 적합한 동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태극권 수련을 양생에 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태극권은 어디까지나  공수를 목적으로하는 무술이므로 
   건강법으로는 불필요한 동작도 있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래서 기공에 알맞은 동작만을 가려내어 배우기 쉬운 공법으로 
   재편한 것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것을 "태극기공" 이라 부른다. 
   태극기공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중에서 이름있는 것으로는 
   임후성의 "태극기공 십팔식", 초극서의 "기공태극 십오세",  
   주염풍의 "기공태극 십삼세", 마예당의 "태극공" 등이 있다. 
   특히 "태극기공 십팔식"은 체조식으로 엮은 것이어서 여럿이 음악에
   맞추어  연습하기 적합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태극기 공회에 의해 
   제일 먼저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와는 달리 동작중의 자세에 중점을
   두는 '기공태극 십오세'도 주목할 공법으로서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4. 참고 사항 무당파(혹은 무당도)는 장삼봉이 세운 문파가 아니라 적어도 당나라 
    말기에는 성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교의 일파로서의 무당도는 원나라 
말기에 전란에 의해서 거의 파괴되었다가 명나라 성조 영락제에 의해서 부흥
되었다. 성조는 1412(영락10)년 칙령을 내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당산은 
천하의 명산이고 현천상제를 모시는 곳이라 도관이 있었는데 원말의 소란으
    로 모두 타 버리고 말았다. 자신은 즉위할 때 신명의 가호를 받았기때문에 
무당산에 도관을 건립하여 태로 부처의 영을 위로함과 동시에 천하만민의 복을 
기도하려 한다고... 성조는 삼십여 만명을 동원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玄天玉虛宮, 興聖五龍宮, 大聖南巖宮, 태현자소궁 등 네 도관을 건립했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이 외에도 다섯개의 도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도관에
    는 많은 전답이 하사되고, 면세특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성조가 이런  일들을 
한 것은 사실 무당도에 귀의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저명한 도사였던 
장삼봉을 자신의 측근에 두려 했다는 설이 있다. 확실히 장삼봉은 무당파와 
관계가 있었고 벽곡에도 뛰어났기 때문에(즉 도력이 높았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또 그가 무당파의 부흥에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성조는 호북성 방면의 인심을 사려 했던 것 같다. 무당파는 성조의 도관
건립에  의해 경제적 기초가 확립되고 동시에 도록사(당시 도교의 관리를 
맡았던 관청)의 한 자리에 무당파의 도사가 임명되어 도교의 관리 행정면에도
일정한 지위를 차지 하게 되었다.  무당파는 연단과 驅邪를 본령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영종  때부터는 
환관이 무당산을 관리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도교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