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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참 힘들죠? 근데 내일은 지금보다 덜 힘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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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추천도서)+감상평

[무라카미 하루키] 비 피하기

duaidot 2026. 1. 7. 11:45

1. 느낀점

이 글을 읽고 가장 먼저 남는 감정은 담담한 쓸쓸함입니다. 이야기는 자극적인 소재(돈과 섹스, 관계의 거래성)를 다루고 있지만, 읽고 나면 오히려 감정의 고조보다는 비가 그친 뒤의 공기처럼 차분한 공허가 남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크게 불행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그 애매한 상태가 현실과 닮아 있어 독자는 쉽게 판단하지 못한 채 이야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특히 “섹스가 화산처럼 공짜였던 시절”을 회상하는 마지막 문장은, 단순한 성적 자유의 상실이 아니라 젊음·순수·무상성에 대한 상실감을 건드리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2. 감상평

① 도덕 판단을 유보하는 서술

이 작품의 인상적인 점은 어떤 선택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돈을 받고 관계를 맺은 여성도, 그 이야기를 듣는 화자도, 누구도 비난받지 않습니다. 작가는 “성실함”이나 “타락” 같은 윤리적 단어를 의도적으로 비껴가며, 삶의 선택을 그저 하나의 상황, 하나의 국면으로 보여줍니다.

② 관계의 경제성에 대한 성찰

작품 전반에는

“우리는 많든 적든 모두 돈을 주고 여자를 산다”
라는 문장이 상징하듯, 사랑·섹스·노동·소비가 분리되지 않는 현대인의 삶이 깔려 있습니다.
연애든 결혼이든, 심지어 자유연애조차도 완전히 ‘무상’일 수 없다는 인식은 불편하지만 설득력이 있습니다.

③ 도시적 고독의 정서

여자의 고백에서 드러나는 것은 성적 타락이 아니라 도시 속 고립입니다.
사람은 많지만 연결은 얕고, 전화는 있지만 지속되는 관계는 없는 상태.
그녀가 돈을 받고 남자와 잠든 이유는 욕망보다도 불안과 분노, 공허의 해소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3. 작가의 느낌과 작품 세계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태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냉정하지만 잔인하지 않은 시선

작가는 인간을 냉정하게 바라보지만, 결코 잔혹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구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정죄하지 않습니다.
이 거리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여백으로 작용합니다.

② “삶은 하나의 총체”라는 인식

일, 사랑, 섹스, 돈, 고독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같은 삶의 다른 얼굴이라는 인식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작가는 섹스를 특별한 신성함이나 타락으로 다루지 않고,
그저 삶의 연속선상에 놓인 하나의 행위로 다룹니다.

③ 상실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작가

젊음이 지나간 뒤, 이상이 퇴색된 뒤에도 삶은 계속됩니다.
이 작품은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희망을 억지로 채워 넣지 않습니다.
비는 그치고, 별은 뜨고, 화자는 뱀장어를 먹습니다.
삶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됩니다.


4.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 작품은 사랑과 섹스, 돈과 고독이 얽힌 도시인의 삶을 비를 피하듯 잠시 들여다보고, 아무 판단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이야기다.